'선거제도 개혁'이 정치 개혁의 첫걸음이라고 믿는 사람들 몇몇이 모여서 '셀럽부터 백수까지' 다양한 유권자들의 선거와 정치 경험에 대한 목소리를 수집해보려 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선거'라는 행위가 정치와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접속하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선거 제도 개혁에 대한 공감대를 확장하고 싶습니다.


"저는 성소수자, 게이입니다."

성공회대학교 제32대 총학생회 보궐선거에 정 후보로 출마한 백승목 씨는 정책토론회에서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하며 화제가 되었다. (후보 시절 인터뷰 다시 읽기) 한 대학의 총학생회선거에 출마한 후보가 성소수자라는 것. 여러 무늬와 색깔을 가진 이들이 존재하는 대학 사회에서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어야 한다. 하지만 백승목 씨의 커밍아웃은 언론의 주목을 받고,지지를 얻기도 하며,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여전히 성소수자의 존재가 낯설고, 당연하지 않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백승목 씨의 출마는 우리 사회의 '정상'이라 여겨지던 규범을 해체하고 재구성하겠다는 선언이었으며, 잠재적인 변화 가능성을 체감하게 한다. 백승목 씨는 총학생회장이 되어 학내 평등문화 형성에 힘쓰고 대학 구조개혁 문제에 대응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회적 의제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 내고 있다. 제19대 대선 국면에서 성소수자 의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회 전반에서 성소수자 이슈가 다루어지는 모습을 살펴보고 변화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백승목 성공회대 총학생회장을 만나보았다. 인터뷰는 대학 내 기말고사가 한창인 6월, 성공회대학교에서 진행되었다.


총학생회 이름이 <바다>이다. 기조와 사업을 소개해 달라.

신영복 선생님 말씀 중 '바다는 만나는 모든 것들과 소통하고 변화하며 나중에 크게 만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총학생회 기조에 잘 맞다. '평등한 문화를 만드는 새로운 물결'이란 뜻에서 <바다>라고 이름 지었다. 지금 공약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메인 공약은 인권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것이다. 학생사회에 다양한 이들이 존재하는데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서로 배려하고 존중할 수 있을지, 어떤 것이 인권 침해적인 상황인지 명시하는 인권 가이드라인을 만들 계획이다. 이 외 중앙운영위원회에 평등문화 약속문을 의결시켰고, 학생대표자반성폭력 교육 필수 이수를 실행 중이다.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는 사건들이 학생회 사업에서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바다>는 소수자가 배제되지 않는 문화를 만드는 사업이 될 수 있도록 힘쓸 것이다. 이 외에도 장애시설조사, 복지시설 조사를 하고 있다. 학내 성중립 화장실 건설 또한 추진할 계획이다.


학생회장 하기 전엔 어떤 활동을 했는지 궁금하다.

중학교 때부터 다문화, 평화 등에 관심이 많았다. 청소년 센터에서 프리버마 운동도 했고 외국인 노동자분들과 함께 활동한 경험도 있다, 아시아 평화기획단 활동도 했었는데, 이 모든게 감수성을 키워나가는 작업이었던 것 같다. 성공회대 진학 후 학생회, 동아리 등 학생 사회에서 주로 활동했다. 청년으로서 가지는 문제의식과 연결 지어 송내동 청소년 문화의 집에서 청소년 멘토링 활동도 했다.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에 관련 활동도 지속 하고 싶었다. 이전엔 내가 성소수자라는 걸 이야기하기 어려웠다. 활동하는 분들을 먼발치서 바라보고, 오프라인에서 친한 사람만 조심스럽게 만나는 정도였다. 학내 퀴어 커뮤니티조차 없었다. 수업시간에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어도 문제제기할 공간이 없었다. 학생회에 문제제기를 할 수도 있지만 아우팅 당하는 게 두려웠다. 성공회대학교에 퀴어 모임이 없다는 것에 회의감이 들었고, 연대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작년 2월 성공회대 퀴어모임 '레인'을 만들었다. 초반에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큐브'와 연락이 닿아 연대체로 활동하고 있다. 큐브 행정 팀원으로 활동도 했다.


활동경력이 화려하고 활발하다. 그런 경험들이 직접 출마까지 결심하게 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이 전의 학생 사회에 회의를 느꼈다. 13개 학과 중 3개 학과가 비대위(비상대책위원회)인 적도 있다. 그리고 작년 성공회대 내 성폭력 사건이 대두되고 학내 큰 혼란이 왔다. 학내 퀴어모임이 만들어져서 퀴어의 존재가 가시화되었고, 인권위원회도 있을 정도로 인권 감수성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왔는데 나아지는 것은 미비했다. 학생사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없다는 회의감이 들었다. 학생 사회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해결하고자 노력하면 변화에 힘이 실린다는 믿음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의시간 내 혐오 발언이나 성폭력 사건 등을 총학생회라는 기구를 통해 해결하고 싶었던 건가?

성폭력 문제는 학생사회의 큰 문제다. 학생사회에서 학생들 간 감수성의 차이가 크기도 하다. 그 간극을 좁히고 싶었다. 그리고 특히 작년 시국이 어지러웠는데, 총학생회가 입장을 내고 정치적으로 활동하는 게 부족했다. 학생들이 비판의식이 강하고 모두 고민이 많았지만, 기구 차원의 입장표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현실에서 학생회를 단단하게 꾸리고 소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무너진 학생사회를 어떻게 바로 세울까 고민하던 친구들이 모여 선본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내부에서 민주적으로 대표자를선출 해서 출마했고, 당선되었다.


어떤 기준으로 후보가 되었나?

내부 경선으로 후보가 되었다. 그리고 익명 카톡방을 만들어서 질문을 받고 답변한 후 다시 투표했다. 7명이라는 적은 숫자였지만 부족한 지점을 알게 되었고 대표자로서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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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목 성공회대 총학생회장 ⓒ비례민주주의연대


정책토론회에서 커밍아웃하며 화제가 되었다. 커밍아웃은 계획한 건가?

계획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단 후보로 출마하며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첫째로, 학생사회를 재건하고 인권과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을 좁혀나가는 게 큰 목표였다. 그리고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있어 그 물결에 합류하고 싶었다. 내가 대학 내 대표자로 출마하며 6번째로 커밍아웃한 후보인데, 큐브의 목표 중 하나는 대학 내 성소수자 가시화를 활발히 하는 것이다. 이전에 계원예대 장혜민씨가 총학생회장 선거에 커밍아웃하고 출마하였다. 여기서 끝나면 안 되고 계속 이슈를 끌고 가야 한다는 욕심으로 크게 액션을 취했다.


커밍아웃 후 성소수자 담론이 활발하게 논쟁 되었다고 느끼나?

그렇다. 이렇게까지 화제가 될 일인가, 싶을 정도였다. 커밍아웃, 벽장을 나오는 것 자체가 지금은 용기와 힘이 필요한 일이자 대단히 큰 메시지를 던지는 일이다. 그러나 커밍아웃은 대단한 일이 되지 않아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커밍아웃이 당연한 사회가 되면 좋겠다. 한국은 이제 가시화가 시작되었다고 느껴진다.


19대 대선만 봐도 원래 있었던 의제인데 선거라는 국면에서 이슈가 되기도 한다.

맞다. 선거 때마다 의제를 띄우기 위한 활동을 하지 않으면 묻혀버리기 때문에 계속 투쟁하고 있다. 투쟁의 목적은 가시화다. "드디어 한국에도!"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있었다. 노동자 투쟁, 세월호 추모 집회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의제에 성소수자는 항상 있었고, 함께 운동하고 연대하고 있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 선거운동에 참여했던데.

지지자였다. 당시 문재인 후보가 토론회에서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이야기한 후 담론이 크게 형성되었는데, 마침 뉴스타파에서 심상정 후보 지지자로 출연해달라는 제안이 왔다. 내가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기에 참여했다.


계속해서 정치 활동을 하게 되는 동력이 무엇인가?

정치가 처음엔 너무 어렵고 나와 관계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나의 삶이 된 것 같다. 내가 사는 삶이 정치다. 나의 삶, 우리의 삶이 정치와 연결될 수밖에 없으니, 적극적으로 목소리 내고자 다짐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어렵다. 많은 이야기를 듣는 것도 중요하고, 나의 신념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한편 타협을 봐야하나 싶기도 하다.


선거를 겪은 사람으로서 에피소드가 있는가? 선거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선거는...정말 재밌다(먼 산). 다양한 경로, 특히 익명게시판에서 학우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학우들이 원하는 것이 선거 과정에서 발화되는 계기였다. 비판의 목소리도 많았다.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모두 귀담아들었다.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선 권한을 위임하고 우리의 대표자가 법안을 만드는데, 본인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이 있다고 생각하나?

없다. 소수의 의원이 있긴 하지만 힘을 가지긴 어렵다. 언제나 20대에게 투표하라고 하는데, 이번 선거에서 20대 투표율이 굉장히 높았다. 20대 청년들의 고달픈 삶이 조금은 투영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큰 장벽을 못 뚫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정당, 어떤 정치인이 있으면 좋겠는가?

성소수자 정치인, 페미니스트 정치인이 필요하다. 말로만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정치인은 필요 없다. 기득권층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눈치를 안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소신 있는 정치인가? 개인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이다.


투표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하나?

사표가 될지언정 소신에 투표한다. 지금까지 네 번의 선거를 겪었는데, 늘 소수 진보정당이 원외 정당으로 남는 것을 보았다. 소수 정당이 원외에 머물 수밖에 없는 선거제도에 문제의식을 느낀다. 그리고 청소년에게 선거권이 없는 것도 문제다. OECD 국가 중 18세 참정권이 없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언제까지 어린아이로 바라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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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 인터뷰의 5번째 인증샷 ⓒ비례민주주의연대


학교에 대학구조개혁을 규탄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더라. 대학구조개혁도 정치권이 키를 쥐고 있을 텐데.

대학구조개혁은 기업 논리, 신자유주의 논리에 맞춘 시스템이다. 박근혜 정부 때 추진되어 피해를 보고 있다. 융합인재를 육성한다며 학과를 통폐합하는 건데, 대학이 취업 사관학교가 되어가는 거다. 대학의 목표는 '올바른 사유를 할 수 있는 관문'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취업만이 목적이 되어 정부의 구조개혁에 맞춰 가는 게 너무 안타깝다. 대학구조개혁은 대학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것이다. 문제가 큰데 전혀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서 안타깝다. 선거 때도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 심상정 후보도 청년, 대학생의 삶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구조개혁에 대해 제대로 내놓은 후보는 없었다.


대학 사회는 물론 한국 사회 전반에서 활발하게 정치활동을 하는 것 같다. 응원하겠다. 끝으로 우리 사회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새 정부가 들어섰다. 촛불이 만든 대통령이기에 더욱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끊임없이 목소리 내야 하지 않을까? 정치에 대한 관심이 선거 때 관심이 쏠렸다가 식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대선은 한국 사회에 큰 전환점이 될 거 같다. 작년 10월부터 지금까지, 이토록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적이 있을까. 지금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개혁의 적기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한다.


진행|복코(비례민주주의연대 운영위원)

재구성|김푸른(비례민주주의연대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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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유권자들이 던진 표가 사표가 되지 않는 공정한 선거제도. 민주적인 정치시스템. 선거제도 개혁을 이뤄 하루 빨리 해산하는 게 목표.

'선거제도 개혁'이 정치 개혁의 첫걸음이라고 믿는 사람들 몇몇이 모여서 '셀럽부터 백수까지' 다양한 유권자들의 선거와 정치 경험에 대한 목소리를 수집해보려 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선거'라는 행위가 정치와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접속하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선거 제도 개혁에 대한 공감대를 확장하고 싶습니다.



"저는 영화를 만들고 동물보호 운동을 합니다"

이처럼 간결한 자기소개가 또 있을까. 2016년 지난 총선에 초록색 피켓을 든 사진과 함께 임순례 님의 SNS에 올라온 글이다. 그 글의 끝에는 #녹밍아웃(녹색당 지지 선언)이라는 해시태그가 붙어있었다. 그녀는 2017년 대선에서 문화예술인 450여 명과 함께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지지 선언에도 앞장섰다. 이유는 간명했다. 정의당이 심상정 대선 후보를 앞세워 내건 정책(사드 철회, 탈원전, 동물권 헌법 명시 등)에 동의한다는 게 이유였다. 그렇다. 그녀는 영화를 만들고 동물보호 운동을 하면서 총선이든 대선이든 선거마다 본인의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는 데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현재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를 만들고 있고,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KARA)의 대표를 맡고 있는 임순례 님을 만나봤다.


요즘 영화 작업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리틀 포레스트>라는 일본 원작 영화를 만들고 있는데 4계절이 전부 등장하는 영화다. 겨울부터 시작해서 봄까지 마쳤고 이제 여름과 가을만 남았다. 주연 배우도 1명뿐이고 맨날 농사짓고 자전거 타고 밥 해 먹고 극적인 사건은 없는 이야기라 한국에서 될까 싶지만. 일단 저예산으로 시작해서 들인 돈만 빼자는 심정으로 만들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대표로도 알려져 있으신데. 지난 대선에서는 역대 대선 중 동물권 관련 정책이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났다. 대선 후보들의 정책 공약을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전 대선에도 동물권 정책을 각 후보에게 똑같이 제안했었는데 거의 답이 없었다. 이번 대선에서는 홍준표 전 후보만 빼고 다 적극적이고 이전보다 진전된 답변을 주셔서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급진적인 정책은 헌법에 동물권을 넣겠다는 심상정 전 후보였다. 단계적으로 개 식용을 철폐하겠다고 말한 유승민 전 후보의 정책도 의외였다. 문재인 현 대통령은 과하지 않은 수준으로 받아들이긴 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실생활에서 가장 친 동물적인 분이라 기대되는 부분도 없진 않다. 반려동물도 있으시고, 유기견을 청와대에 데려가겠다는 약속도 지키시고. 물론 동물을 좋아하는 것과 동물권과 동물 복지 향상은 다른 것이지만. 그래도 역대 어느 정부보다 기대가 크다.


동물권 정책으로만 봤을 때 심상정 전 후보가 가장 개혁적이었는데 6% 선전으로 그쳤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유권자의 사표 심리에 대한 의식도 무시 못 할 것 같다.

물론 유권자들이 스스로 인식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유력했던 더불어민주당에서 대놓고 사표 심리를 거론한 것은 굉장히 무례했다고 생각한다. 진보정당에도 가치라는 게 있고 지지하는 사람들의 소신도 있는데. 사표 논리로 몰아가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대선을 겪으면서 소수정당인 정의당이나 녹색당이 한국 사회에서 자리 잡기 위해선 선거제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힘들겠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대선은 끝났으니 이제부터가 중요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대통령이 바꿀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국회에서 법과 정책으로 다뤄지는 부분도 있을 테니. 카라에서도 법·제도 개선 활동을 꾸준히 해오셨는데 국회 대응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점이 있다면?

어쨌든 동물 관련 이슈는 다른 이슈에 비해서 항상 밀린다. 사람에 관련된 복지나 의제가 우선순위가 되면서 중요한 순간에는 뒤로 밀리게 된달까. 그런 점이 늘 아쉽다. 그나마 20대 국회는 과거보다 국회의원 개개인 중 동물에 관심 있는 분이 많아졌다. 동물복지포럼에 가입한 의원 수도 많아지긴 했고. 하지만 개인적 관심도보다 집권 여당이나 의석수가 많은 곳에서 주도적으로 밀고 나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동물 복지가 사람이 아니라서 밀리는 게 아니라 사람과 연관된 정책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래야 각 정당에서도 우선순위를 갖게 되고 결정적인 순간에도 밀려나지 않을 것이다.


올해 네덜란드도 총선을 치렀다. 네덜란드에는 동물을 위한 정당이 있는데 지난 번에는 2석이었는데 이번에 5석으로 늘었다. 소수정당이라고 해도 색깔이 분명한 정당이 국회에 들어가면 국회가 조금 더 달라질 텐데. 한국 정치와 국회에서 소수정당은 어떤 위치에 있다고 보시는지?

소수정당이 가진 가치라는 것이 결국은 다수 정당 구도 속에서 늘 후순위로 밀리고 양보와 헌신은 정작 의석으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소수정당의 참신하고 개혁적인 정책은 주요 정당에 도용되거나 세탁되기도 하고. 물론 어느 식으로든 쓰이면 좋긴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소수정당의 비판적 목소리에 대해 그런 식으로 하면 다음에 정당 투표 안 준다는 식의 태도를 보고 참 마음 아팠다. 무슨 표를 그런 식으로. 한 표의 무게는 똑같은데 소수정당을 대하는 태도가 참...

국회의 지역구 국회의원들을 보면 중요 국가 정책에 있어서 자기 판단을 하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 자기 지역구의 이익과 유권자들의 눈치 보기가 너무 극심하다. 이것이 한국 정치에 있어서 너무 지역 이기주의로만 계속 가게 되다 보니 한국 사회 전체를 위한 중요한 가치들을 개선해 나가는 데 굉장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래서 국회의원 선거에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빨리 도입되는 것이 한국 사회의 개혁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 제도 개혁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선거도 정치와 마찬가지로 승자독식 구조가 되어가고 있다. 사실 민주주의라는 것은 굉장한 다양성이 존중되는 게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소수정당에서 내세우는 가치들의 우리 생활에 불필요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선거제도에서는 다 묻혀버리고 사장되어 버리는데. 그 제도를, 정책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선택이 묻히지 않고 사장되지 않도록 하는 가장 유효한 선거제도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그런 다양성이 한국 사회에 활력을 주고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더 확장해주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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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쓸까 고민하는 임순례 감독님 ⓒ비례민주주의연대


국회에서 가장 바뀌었으면 하는 법률이 있다면?

우선 희한한 게 제 주변에는 다 녹색당 찍었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번에도 내 주변은 다 심상정이었다(웃음). 녹색당이나 정의당이나 소수정당은 결국 아까 말한 데로 사표 심리가 크다. 과연 의석이 없는데 수권 능력은 있는지 이런 걸 계속 이야기를 계속 듣는다. 물론 메인 정당에서 주구장창 이야기하는 경제나 재정 수치도 중요하지만, 원전, 기후 문제, 동물 복지 등 그동안 도외시해왔지만 우리 사회에 중요한 가치들을 소수정당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에 직결되는 문제. 가장 사회적 소수 집단인 동물, 성소수자, 비정규직 노동자들 등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외면받았던 집단들. 이 집단들과 관련된 법률이 국회에서 높은 중요도로 빨리 처리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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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 인터뷰의 4번째 인증샷 ⓒ비례민주주의연대


채식하신다고 들었다. 채식에 대한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여전히 개 식용 문제도 그렇고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크다. 결국, 먹거리도 정치와 연관될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보시는지?

한국 사람들이 먹는 것에 굉장히 민감하다. '니들이 왜 나 먹는 것까지 건드려?' 이런 심리랄까. 개 식용도 마찬가지이다. '그럼 돼지는? 소는?' 이런 반응이 일반적이다. 영화 현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밥차에서 식사해야 할 때가 많다. 내가 채식하는 게 알려져서 밥차에서 꼭 고기가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요리를 해 주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끔 전혀 채식을 안 하는 친구들이 호기심에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해보기도 하는데, 막상 먹어보면 괜찮다는 반응이 많다. 그걸 보면서 일반인들에게 채식에 대한 강요보단 더 자주 접할 기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제일 어려운 건 회식이 아닐까. 고기 없이 소주 마시는 걸 상상하기 어렵다고들 한다. 배달문화도 마찬가지다. 치킨은 너무나 손쉽고 저렴해서 익숙한 안주거리이다. 회식과 배달문화 때문에 손쉽고 값싸게 고기를 접하게 된다. 채식 안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식당이 많아져서 채식을 접하는 게 자연스러운 운동이 되었으면 좋겠다. 고기 없이도 술을 마실 수 있다. 경험을 해보면 몸이 가볍고 편안하다는 걸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채식 식당이 늘어난다고 해결되진 않을 것이다. 결국, 먹거리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정치적 결단과 선택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운동을 해도 풀리지 않는 지점이 있을 테니까. 그나마 고무적인 것은 동물 운동 판에도 사회 문제 의식을 가진 젊은 친구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나 같은 사람을 동물 운동 1세대라 보면, 이제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려 한다. 동물 운동 판도 세대교체가 생기면 정치에 대한 참여율이 훨씬 높아지지 않을까.


진행|하승수(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김푸른(비례민주주의연대 운영위원)
재구성|복코(비례민주주의연대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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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유권자들이 던진 표가 사표가 되지 않는 공정한 선거제도. 민주적인 정치시스템. 선거제도 개혁을 이뤄 하루 빨리 해산하는 게 목표.


'선거제도 개혁'이 정치 개혁의 첫걸음이라고 믿는 사람들 몇몇이 모여서 '셀럽부터 백수까지' 다양한 유권자들의 선거와 정치 경험에 대한 목소리를 수집해보려 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선거'라는 행위가 정치와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접속하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선거 제도 개혁에 대한 공감대를 확장하고 싶습니다.


국민이 촛불을 들었다. 조기 대선이 시작되었고 대통령이 바뀌었다. 선거철에만 유권자, 시민이라 호출되던 사람들이 봇물 터지듯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로 정치 현실을 설명하기 시작했고 목소리를 높여가며 정치적 경험을 확장했다. 광장은 그야말로 생동감 넘치는 민주주의의 현장이었다.

반면, 거리가 아닌 국회 안에서 대의민주주의를 고민하고 '직업적으로' 정치를 경험해 온 이들도 있었다. 국회 안에서 바라본 정치와 선거제도는, 거리의 그것과 어떻게 다를까. 아니, 어떻게 서로에게 닿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안고 원내 정당 중 소수 정당의 정체성을 유력하게 가지고 있는 정의당, 보좌관 홍기돈 님을 만나봤다.

진지함이 뚝뚝 묻어나는 인터뷰 현장 ⓒ비례민주주의연대


누가 대통령이 되든 임기 말까지 지켜봐야 하지만, 당장 분위기는 매우 들떠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권이 바뀐 시점을 전후로 살펴보았을 때 국회 내부적인 분위기는 어떤가?

다들 예상했겠지만, 정당별로 차이는 있다. 물론 박근혜가 워낙 불통의 정치였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새로운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분위기가 좀 컸다. 국회라는 곳이 다양한 정책을 두고 정당 간의 협상과 타협이 존재하는 곳인데 지금까지 여당(당시 새누리당)은 그런 소통의 물꼬를 트는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오히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귀속되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 굉장히 답답했다. 물론 보는 사람마다 문재인 정부를 보는 시각이 다르긴 한데, 이명박근혜를 거치면서 보이지 않았던 모습, 예를 들어 식후 커피 모임이 화보처럼 찍히는 모습 등을 보면 확실히 상징적이고 권위주의적 모습을 탈피할 거라는 기대는 있다.


일단 직업이 '보좌관'이다. 홍기돈 님은 언제부터 보좌관이었나? 

국회에 들어온 것은 18대 하반기 강기갑 의원실을 시작으로였다. 2002년부터 서울시 노원구에서 민주노동당 관련 활동이나 일을 해오면서 사무국장, 조직국장, 정책국장을 거치게 되었고 당시 이수정 서울 시의원(민주노동당)과의 인연을 거치면서 보좌관까지 흘러오게 되었다.


그렇다면 2002년부터 정당 활동을 해왔다는 이야기인데, 왠지 정당 활동이 생애 정치적 첫 경험은 아니었을 것 같다.

대학교 때 학생운동을 했다. 내가 94학번이니까 첫 투표가 1997년 대선이었다. 하지만 군대에서 한 투표라 솔직히 정치적 행위로 기억 남지는 않는다. 오히려 생애 첫 정치적 경험이라 할 만한 것은 2000년 대우차 구조조정 관련해서 벌어졌던 폭력적인 진압 사건이다. 그때 정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대우차 사건을 겪으면서 의사결정권을 가진 권력자가 어떤 행위를 하느냐에 따라서 대중의 삶이 바뀐다는 것을 느꼈다.

그 후, 2년 뒤인 2002년이 나에게는 중요했던 한 해였다. 당시 총학생회장으로 학생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가게 되었고, 거기에서 나 스스로와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감옥에서 평화, 통일, 신자유주의 반대를 외치는 나의 '운동'이 지나치게 선언적인 구호이자 이론적인 추상은 아니었을까. 현실의 문제를 지나치게 도외시하고 이론적인 운동만을 고집한 건 아니었을까. 아마도 감옥에 있는 나를 면회 오셨던 어머니를 보면서 소위 현실의 문제라는 것을 맞닥뜨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 정말 괜찮은 것이었을까를 고민하다가 출소 후 학생운동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가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기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은 컸다. 고민 끝에 언론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물론 학생 운동을 함께 했던 사람들과 활동도 한 축으로는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민주노동당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당원으로 가입했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코앞의 지방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입장이라 사람들이 많이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학생운동을 했던 나에게도 상근 당직자 자리 제안이 들어왔다. 솔직히 언론 시험도 잘 안 될 것 같기도 해서 냉큼 수락했다. 하하하. 그렇게 지역에서 7년 당직자로 있었다.


아, 그럼 실질적인 현실정치에는 보좌관이 아니라 당원이자 당직자로 시작한 셈이다. 기억에 남는 활동들이 있다면?

서울시 노원구에 있는 지역 시민단체와 구의회 모니터링 사업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아, 그리고 지역주민들과 학교 급식 조례제정 운동을 해서 주민발의에 성공했던 것이 진짜 뿌듯한 기억이다. 당시 12,000명 서명이 목표였었는데 23,000명의 서명을 받아내서 대대적인 성공이었다. 사실 우리 사회가 정치적인 이론, 제도, 시스템에 대해서 전혀 교육해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7년이라는 기간이 나에게는 지역이라는 현장에서 함께 학습하고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지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다 공부하고 실천할 대상이었다.


현재 대선국면을 거치면서 사실 국회가 다채로워지고 있긴 하지만, 정의당이면 여전히 소수정당이다. 소수정당의 보좌관이기 때문에 다른 거대정당의 보좌관과 다르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면?

너무 많다. 사실 가장 큰 차이는 원내 20석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교섭단체가 되어 구조적으로 정보를 얻는 데 느리다는 점이다. 국회 일정이나 안건 등 굵직굵직한 사안들을 교섭단체들끼리 협상하니까. 교섭단체인 정당들은 협상이 짧든 길든 무슨 이야기들이 이루어지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우리는 아예 협상에 못 들어가니까 그냥 계속 스탠바이 상태, 다시 말해 교섭단체들끼리의 뭔가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이다. 같은 원내진출 정당이라고 해도 의견 자체를 낼 수 없는 구조 속에서는 모든 것이 다 불리하게 느껴진다.

반면 국회에서 소수정당으로 갖는 자부심이 있다면, 우리의 존재만으로 여러 가지 논의에 대한 출발점이 좀 더 진보적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만약 우리가 없었다면 모든 논의의 전제는 우리의 왼쪽이 아닌 민주당의 왼쪽에서부터 협상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국회에 존재하기 때문에 소수의 입장에서 조금 더 생각하면서 출발할 기회 자체를 만들어 왔다고 생각한다. 이번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가 없었다면 성소수자 문제의 이야기 출발 자체가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노동자, 여성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자부심이 있다.

그렇다면 왜 정의당 같은 나름대로 규모 있는 진보정당이 계속 소수정당으로만 머무를 수밖에 없는가. 선거제도가 완전 엉망이기 때문이다. 비례대표제 확대를 우리처럼 계속 주장해 온 곳은 없다. 우리는 절실하다.

정의당 홍기돈 보좌관 ⓒ비례민주주의연대


소수정당의 설움이 사실 선거제도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 그런 깨달음을 언제부터 느꼈나?

2002년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민주노동당이 서울시 의원 1명을 배출하는 데 성공했다. 지역구는 아니고 비례대표였다. 만약 비례대표가 없었다면 민주노동당은 후보 당선에 실패했을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비례대표의 필요성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지역구에서 2명, 11.6%의 정당득표율로 8명의 비례대표를 당선시켰다. 사실 국회의원 300석 중 11%면 30석 아닌가. 정당득표율에 따라 우선적으로 정당에 의석수를 주는 방식이 아니라면 많은 정당과 국회의원은 지역에 발목을 잡힌다. 물론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실제 정치에서는 국회의원이 주민들의 요구에 발이 묶이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지역구의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많은 의원이 쪽지 예산을 신경 쓰는 것이다. 이런 것은 예산 낭비이자 비합리적 의사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왜 실현되지 않고 있을까? 물론 이번 대선후보 토론을 거치면서 심상정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선거제도 개혁에 관련한 약속을 받아내기는 했는데.

이제껏 선거제도 개혁이 안 된 이유는 단순하다. 기성 정당이 안 해주니까. 개인적으로 문재인 후보에 대해 받아낸 약속은 기대된다. 사실은 2012년 대선 당시 심상정 후보가 후보사퇴를 하면서 당시 문재인 후보와 정책협약을 맺었고 그 중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사퇴 조건에 있었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서 민주당 내에서도 전혀 반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청난 의지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의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에는 그 숫자가 적었다. 그러나 이번 대선을 통해서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의제는 더 확산되었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봤을 때 정의당만이 아니라 이제는 국민의당, 바른정당도 선거제도 개혁에 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었다. 대통령 하나가 바뀌어도 이렇게 정치권 분위기가 달라지는데, 국회의원 300명이 달라지면 이 나라가 얼마나 달라질까. 내부 분위기는 대세가 굳어진 것 아닌가, 국민적인 의사와 여론도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되다 보니 정치권이 반대할 만한 명분이 없어졌다. 다만 개헌 논의와 어떻게 할 것인가는 숙제로 남아있다.


선거제도가 개혁되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방식으로 선거가 치러진다고 상상해보자. 그렇다면 정의당 입장에서는 많은 의석이 생기는데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일단 의석이 늘어나서 교섭단체가 되면 교섭단체의 보조금이 많아지므로 정의당이 정책역량이 커지는데 돈을 쓸 수 있어서 좋고. 또 교섭하면 우리 목소리가 분명하게 전달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법안소위에 정의당 의원이 들어가는 것이다. 현재는 소위원회 인원수를 정당별로 배분하는데 우리는 비교섭단체니까 법안소위에서 빠져있다. 그런데 이 법안소위가 매우 중요하다. 법을 심사할 때 논의 테이블에 앉을 수만 있어도 법에 관련한 다양한 논의들을 풍부하게 끌어낼 수 있다. 그런데 현행 선거제도 하에서 소수정당으로만 머무를 수밖에 없는 당들은 국회 내에서도 뭔가를 시도해볼 기회 자체가 없다.


사실 선거제도가 바뀌고 나면 정의당도 교섭단체가 되고, 아직 원내 진출하지 못한 정당들 몇몇도 원내 진출을 하면서 국회의 구성이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홍기돈 보좌관이 보기에 가장 눈에 띄는 정당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녹색당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또 하나를 뽑으라면 기독자유당. 녹색당이 기대되는 정당이라면 기독자유당은 두려운 정당이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이 있고 그것들이 국회라는 공간에서 펼쳐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다양성의 전제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언어를 출발점으로 한다. 내가 인정받으면 다른 사람도 인정해야 하는데, 몇몇 사람들이나 정당은 자기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상대방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마음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표현하고 행위까지 한다면 정치에서는 다당제를 통한 합의보다 충돌이 많을 것 같다.

독일에서는 여전히 극우 정당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아마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가 개혁된다면 기독자유당이 원내진입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데, 국회가 아무리 민심을 반영한다고 해도 지나치게 극에 있는 정당이 다 들어온다는 것이 맞는 일인지는 좀 고민해봐야 한다. 통계학적으로 봐도 사실 일반적으로 95% 신뢰도라고 하면서 양 끝은 버리는 게 일반적인 것이 아닌가. 우리 사회에 용인될 수 있는 범위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진입 장벽을 몇 %로 할 것인지 논쟁의 여지가 남아있다고 본다.

100인 인터뷰의 세번째 인증샷 ⓒ비례민주주의연대


지방선거가 당장 내년이다. 어떻게 흘러가리라 예측, 혹은 기대하는가?

예측은 참 어렵다. 민주당이 여전히 강세일 것이고 진보정당인 우리에게도 꽤 좋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자유한국당은 지역적으로 일부 성공할 거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진보와 보수에 대한 이미지가 이번 박근혜 탄핵과 조기 대선을 거치면서 많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기존 보수는 성공한 자, 능력 있는 자, 경제적으로 부유한 자, 그리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에 반해 진보는 길바닥에서 떼쓰거나, 등산복, 분열, 말 많고 탈 많은 이런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데 이제는 진보가 오히려 세련되고 진정성도 있고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깔끔한 느낌. 보수는 홍준표 덕으로 성폭력, 여성혐오, 비하, 고리타분, 꼰대, 낡은 느낌이 생기는 바람에 이미지가 확 변했다. 세련되고 능력 있는 진보와 합리적 진보의 포지션을 잘 지키면서 실천으로 이어진다면 내년 지방선거는 나쁘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보좌관이 바라보는 국회라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나에게는 일터, 노동현장, 회사이다. 그리고 동시에 공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18대 국회 때 어느 한 의원실에서 제안한 법의 취지가 나쁘지 않아 공동 발의를 해 통과된 적이 있었다. 법의 내용은 의도적으로 부채를 안 갚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채무자의 통장을 묶어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후 어떤 사람이 의원실로 전화해 마구 따지는 것이 아닌가. 내용을 들어보니 생계비가 단 하나의 통장으로 들어오는데 그게 묶여버리니까 쓸 수 있는 돈이 한 푼도 없다는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국회의 결정이 공적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 심도 있게 검토해야겠구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공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결정에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국회는 공적 결정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있는 곳이니까.


요즘 홍기돈 님의 삶 속의 화두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과 정치의 연관성은? 

요즘엔 어떻게 하면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을까가 고민이다. 18대, 29대, 20대 국회로 오면서 느끼는 건 시대는 계속 변하고 국민이 요구하면 다 바뀐다는 점이다. 대통령도 탄핵했고 정당의 시스템, 이념, 요구, 주장 등이 다 변해가고 있다. 과거의 지식과 경험만 가지고는 빠르게 변해가는 유권자의 인식을 쫓아갈 수 없으며 꼰대나 뒤처지는 사람으로 머물고 말 것이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요즘 의원실 후배들과 술 마시며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민주주의자라는 평을 받는다. 제도는 그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들의 실력과 능력에 따라서 크게 많이 변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이번 촛불 보면서 시민의식이라고 하는 것, 국민의 역량이 축척되어 있고 성숙해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에 고등 교육을 받은 수가 어마어마하고 대학진학률도 그에 못지않은데. 대부분 자기 삶의 영역에서 전문가이고 정보의 취합에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문가가 상당수. 정치 제도 개혁이라고 하는 것이 정치권만의 이해관계뿐 만이 아니라 국민과 토론하는 과정을 잘 만들면 좀 더 빠르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가르치려고 들지만 않으면.


진행|신나희, 정대망, 복코 (비례민주주의연대 운영위원)

재구성|신나희(비례민주주의연대 운영위원)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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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민주주의연대

모든 유권자들이 던진 표가 사표가 되지 않는 공정한 선거제도. 민주적인 정치시스템. 선거제도 개혁을 이뤄 하루 빨리 해산하는 게 목표.

'선거제도 개혁'이 정치 개혁의 첫걸음이라고 믿는 사람들 몇몇이 모여서 '셀럽부터 백수까지' 다양한 유권자들의 선거와 정치 경험에 대한 목소리를 수집해보려 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선거'라는 행위가 정치와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접속하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선거 제도 개혁에 대한 공감대를 확장하고 싶습니다.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비례민주주의연대'라는 초정파적인 시민운동단체가 있다(물론 대부분 들어본 적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니 지난 호 인터뷰 참고). 이 단체는 공동대표와 운영위원은 여럿 있지만 상근하는 활동가는 단 한 명뿐이다. 그녀에게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를 비밀이 하나 있다. 비밀이라고 하기에는 별일도 아니지만, 유난을 떨며 별스럽게 반응하는 사람들 때문에 '알 만한 사람들만 아는 비밀'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녀는 북에서 넘어왔다. 사회적으로 통칭하는 그녀의 정체성은 '탈북민'[각주:1]이다. 그녀는 북한에서 넘어온 사람들을 지원하는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활동을 정리하고 작년 초부터 '비례민주주의연대'에서 상근 활동을 시작했다. 변변치 않은 사무실에서 (비례민주주의연대는 다른 단체 사무실에 책상 하나를 임대해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홀로 행정 업무를 처리하고, 문의 전화를 받고, 보이지 않는 곳의 실무를 챙기고 있었다. 조금은 특별할 수 있는, 그래서 더 소중한 '비례민주주의연대'의 유일한 상근 활동가 김미경 님을 만나봤다.


용기 내어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 아마 여러 차례 말해서 지겨울 수 있겠지만 그래도 독자를 위해 북한에서 한국으로 오게 된 이야기를 간단히 소개해주면 좋겠다. 

북에서 왔다고 하면 모두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다. 괜찮다(웃음). 2001년 두만강을 넘었다. 당시 북한에서 아버지는 외교 업무를 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무역을 위해 잠시 북한에 들어와 내가 살던 집에 머물게 된 것이 인연이 되었다. 남편은 중국으로 돌아간 후에 나에게 마음을 두었는지 여러 차례 편지와 사람을 보냈다. 막연한 호기심과 궁금증 때문에 남편이 보낸 사람을 따라 중국에 넘 간 게 탈북이 되었다. 중국에서 1년 6개월 정도 살다가 남편이 한국행을 권했다. 첫 아이가 태어난 이후 남편은 한국으로 가야 가족이 살 수 있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그래서 큰 아이가 5개월이 되던 해에 한국으로 입국했다. 처음에는 나 혼자 넘어왔고 그 이후에 남편, 아들 시어머니 모두 한국으로 오게 되어 지금은 함께 살고 있다. 


와...!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은 스토리다. 비례민주주의연대에서 활동하기 전에 탈북민을 지원하는 단체에서 활동했다고 알고 있다.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의제가 아직 공론화가 많이 된 편도 아닌데 탈북민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다가 어떻게 관심을 두고 단체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나. 

처음부터 정치나 선거 제도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탈북민을 지원하는 일은 10년 정도 하고 정리했다. 정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활동하면서 나도, 조직도, 비전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활동하면서 만난 탈북민에 대한 실망감도 컸다. 당시 나는 탈북민이 모여 함께 공동체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촉매 역할을 했다. 그러나 막상 활동을 해보니 주민들은 정작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는데 소극적이고 오히려 단순하게 '네가 해주는 대로 내가 따라 할게' 식의 태도를 자주 보였다. 또 한편으로는 제안하고 판을 깔아주는 역할만 자처하다 보니 어느 날 문득 나 자신이 해결사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마치 권력을 가진 듯한 위치에 있는 느낌도 싫었고 여러 가지 내면적 갈등으로 일을 그만두었다. 

일은 그만두었지만, 활동가로 살기 위해 주민을 조직하고 공동의 욕구를 주민공동체로 발전시키는 주민조직화 교육은 꾸준히 받아왔다. 거기서 만난 인연으로 '비례민주주의연대'의 활동을 제안받았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나는 원체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이라. 한 번 사람을 믿으면 잘 따른다.


선거제도 개혁을 고민하는 사람들과 함께 (둘째줄 왼쪽 끝이 김미경 님)ⓒ서정우


사람이 좋아서 시작하게 된 정치 개혁 활동이라니 흥미롭다. '정치 개혁'이라는 의제를 다루는 활동을 막상 해보니 어떻나. 

한국에서 15년을 살았는데 막상 정치에 관심을 두고 있던 적은 없었다. 현재도 배워 가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일단 한국의 정치 용어는 굉장히 생소하다. 탈북민이다 보니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정치적 흐름을 잘 모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알아가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데에도 큰 의미를 두고 있다. 하지만 심리적 불안감도 아직 남아 있고 과연 선거제도 개혁이 가능할까 우려스럽기도 하다.


활동하면서 느끼는 심리적 불안감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개인적으로 집회나 기자회견 같은 곳에 아직은 마음 편히 못 나간다. 탈북민 아무개가 집회 갔다고 사진 찍혀서 혹시라도 악용되면 어떡하나 싶기도 하고. 탈북민이라는 딱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활동을 시작할 땐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내 역할에 대해 소극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특히 탈북민 커뮤니티 안에서는 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나를 특이하게 여기거나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빈번하다. 어느 날은, 박근혜 탄핵 촛불 집회에 들렀다가 탈북민 관련 행사에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만난 사람들에게 집회 현장은 근처도 가지 말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아직도 탈북민 사회는 '대통령을 감히 어떻게 끌어내릴 수 있냐' 이런 생각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절대 권력에 대해 반기를 드는 것 자체를 낯설게 여기는 것이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로 이동하면 생소한 것이 많을 것 같은데. 탈북 이후 탈북민을 위한 정치적 교육 과정을 경험한 적은 있는가?

놀랍게도 없다. 북한에서 한국으로 입국하면 '대성공사'라는 기관에서 1개월 정도 조사를 받는다. 북한 주민이라는 것이 확인되면 '하나원'이라는 교육기관으로 옮겨진다. 거기에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교육을 받게 된다. 북한은 순수 조선어를 사용하는데 남한은 외래어를 많이 사용하니까 외래어 교육, 그 밖에 컴퓨터 교육, 시장에서 장보기 등의 생활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나 선거 제도에 관한 교육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는 2001년 11월, 12월을 하나원에서 보냈는데 당시 대선을 앞두고 있었다. 그때 하나원의 강사들에게 이제 주민등록증을 받은 한국 국민이니 투표를 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러나 강사들은 정치에 대한 교육적 접근보단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직·간접적으로 거론했다. 탈북민들은 첫 투표권을 후보가 누구인지, 어떤 정치적 바탕이 있는 사람인지 전혀 모른 채 강사들의 영향을 받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탈북민의 시선에서 바라본 한국의 정치 현실이나 선거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탈북민으로서 한국사회에서 느낀 정치적 경험의 사례가 있다면? 

2004년에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직장에 다니면서도 정치적인 이야기를 내 입으로 해본다는 것을 전혀 상상해본 적이 없다. 유일하게 관심 가졌던 이슈가 탈북민에 대한 복지나 처우 개선 정도였던 것 같다. 다른 탈북민들도 나와 비슷하리라 본다. 탈북민 복지 챙겨 줄 테니 당원 가입하라, 식의 낮은 수준으로 정치에 이용되는 경우도 많다. 탈북민들은 자신들의 울타리가 강한 편이다. 아무래도 우리끼리 여기에 적응하고 자리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커서. 그러다 보니 이해관계를 많이 따지게 되고, 상대적으로 보수 정당이 탈북민에 대한 지원을 잘해준다는 인식이 크다. 

작년 총선 때 새누리당의 17번 후보가 탈북민 후보였다. 그게 탈북민 사회에서는 큰 이슈였다. 하지만 보수 정당에서 말하는 탈북민 지원 정책은 결국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으로 탈북민이 굉장히 열악하고 사회적으로 약자이다 보니 여기서 낚시질하면 걸려들고, 저기서 낚시질하면 걸려들고...안타깝다. 


탈북민이 동등한 시민으로서 같이 살아가기 위해 어떤 정책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남북하나재단' 등 여러 재단에서 지원 사업이 많이 나오기는 하는데 과연 지역에 있는 탈북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까지 다 돌아가는지는 의문스럽다. 어떤 정책이 생기면 그 정책을 집행하는 단위에서 사람 한 명, 한 명에게 도달할 수 있도록 만드는 시스템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본다. 정책이 아무리 좋으면 뭐하나. 시민들, 탈북민들에게 다가가기까지가 어려운데. 그렇다 보니 탈북민 사회도 어느 정도는 타성에 젖어 있다. 탈북민과 관련 정책이나 활동이 등장하면 '이런 면에서 나를 위한 정책이구나' 하는 판단보다는 '참여하면 교통비는 얼마나 나오나?' 이런 반응이 여전히 앞선다. 


한국 사회에서 탈북민이 어떤 존재로 인식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가?

탈북해서 온 탈북민에 대해서 교육도 못 받고, 가난하고, 불쌍하다 등의 동정 어린 시선은 매번 씁쓸하게 느껴진다. 정말 배고프고 못 먹고 못 입어서 온 사람들도 있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탈북민에 대한 편견이 곧 한국 사회의 현재 단면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빈민, 장애인, 노숙자를 나와 다르다고 구분 짓고 딱지 매겨서 바라보는, 현재 사회가 가진 좋지 않은 습관이랄까. 그 그룹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당사자 입장에서는 주홍글씨를 겪어야만 한다. 남한이든, 북한이든 6.25와 일제 식민지를 겪으며 억눌려 살았던 감정에 대한 대물림이 있는 건지. 계층을 나누고 자신을 분류하면서 '나는 그렇게는 안 살아야지'하는 강렬한 열망이 있는 것 같다. 일제 식민지 시절은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정치인들이 왜 북한에 대해서만은 치를 떨고 이를 가는지 모르겠다. 


선거제도가 개혁되면 앞서 말한 것처럼 이해관계에 따라 사회적 약자를 동원하는 문제들이 해결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 

비례민주주의연대가 주장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해서 국회 의석을 가져가는 것이다. 물론 탈북민 중에서도 정치에 직접 참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정치가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다 돈을 이유로 꼽는다. 탈북민이 바라본 '정치인'은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다. 그래서 비례대표제가 확대되었을 때 과연 정당별로 탈북민 정체성을 가진 국회의원이 탈북민의 의사를 반영해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될까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실현된다고 해서 바로 이상적인 정치가 되진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우려하면서도 계속 '비례민주주의연대'에서 활동하면서 선거제도 개혁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뭔가?

탈북민은 정치에 대한 기대감은 낮지만, 우리와 관련된 사람들이 나왔을 때 그 사람이 우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다. 선거제도가 바뀌어 여성, 농민, 노동자, 누구든 국회에 들어가 그 사람을 대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변화는 미비하더라도 시작될 것으로 생각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먼저 도입한 국가들만 봐도 우리와 행복을 바라보는 기준이 매우 다르다. 우리는 좋은 차, 아파트 소유 여부 등 경제적인 부가 중심인 반면 그 나라 사람들은 그렇지 않더라. 행복의 기준을 유연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행복의 기준과 인식이 바뀌면 달라질 것이다.


100인 인터뷰의 두번째 인증샷 ⓒ서정우


비례민주주의연대 활동을 통해 꼭 하고 싶은 것이나 더 얻고 싶은 것이 있다면?

현재는 활동을 재미있게 하고 있다. 나보다 젊은 사람들의 활동력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조직 안에서 젊은 사람들을 키워내는 일에 대한 고민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활동을 통해 성장하고 싶다는 욕구가 크다. 나처럼 '정치에 대해 1도 모르는 사람'이 이제는 한국 정치가 흘러온 역사를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여전히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일은 조금 어색하다. 마음속 깊은 곳에는 탈북민을 위한 활동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도 남아있다. 내가 당사자이고 잘할 수 있는 일이니까. 두 활동을 연결하는 데에도 관심이 있다. 탈북민 3만 명을 대상으로 정치, 선거 제도에 대해 교육을 하는 단체는 단 한 곳도 없다. 내가 공부하고 겪어보니 사회를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필요한 주제인데도 불구하고 어느 곳에서도 고민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선거 제도는 한국의 정치를 인식하게 되는 첫 출발점이라 본다. 내가 어서 말문이 트여서 탈북민을 대상으로 선거제도 개혁과 정치에 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판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현재 일상에서 고민하는 화두가 있다면?

이놈의 육아. 육아는 개인끼리 분담해서 해결될 문제는 분명 아니다. 남성들의 공동 육아, 육아 휴직의 의무화, 육아 교육 등이 보편화하였으면 좋겠다. 어떨 때는 내가 겪었던 북한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어린 시절 북한에서는 직장 다니는 엄마를 위해 직장 내에 탁아소가 마련되어 있었고 2시간에 한 번씩 모유 수유도 할 수 있었다. 지금 한국 사회를 보면...언제쯤 육아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진행|김푸른(비례민주의연대 운영위원)

속기·재구성|복코(비례민주주의연대 운영위원)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1. 1994년에 처음 쓰인 '탈북자'는 법률상 용어로 '북한이탈주민'을 뜻한다. 어감이 부정적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의견에 2005년 순화 용어인 '새터민'이 등장하였으나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럽다고 여겨져 2008년 통일부는 다시 가급적 새터민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최근에는 탈북의 정체성을 다양하고 보편적으로 지칭하는 '탈북민'이라는 용어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탈북민'은 탈북자유민, 탈북주민, 북한난민, 북한이탈주민, 새터민 등의 용어를 함축하고 있어 보편성이 조금 더 강조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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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민주주의연대

모든 유권자들이 던진 표가 사표가 되지 않는 공정한 선거제도. 민주적인 정치시스템. 선거제도 개혁을 이뤄 하루 빨리 해산하는 게 목표.


'선거제도 개혁'이 정치 개혁의 첫걸음이라고 믿는 사람들 몇몇이 모여서 '셀럽부터 백수까지' 다양한 유권자들의 선거와 정치 경험에 대한 목소리를 수집해보려 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선거'라는 행위가 정치와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접속하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선거 제도 개혁에 대한 공감대를 확장하고 싶습니다.


〈비례민주주의연대〉에는 운영위원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모임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말이 운영위원이지 매월 정기적으로 모여 머리를 맞대고 한국의 민주주의와 선거제도, 정치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하고 떠들고 있다. '한국의 선거제도를 바꾸기 위해 뭐라도 해보려고 마음과 시간을 내어 애쓰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설명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선거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어찌어찌 모이게 되다 보니 구성원의 성격도, 정체성도 제각각이다. 정치를 전공으로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부터 정당 활동가, 마을 활동가, 대학교수, 시민운동 활동가, 반백수, 정치 스타트업 노동자까지.

알음알음 지인의 소개로 혹은 어디에선가 정보를 듣고 자신의 관심사를 쫓아 모인 사람들이 벌써 스무 명 남짓 되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무슨 다단계 피라미드 조직 같다. 그런데 아니라고도 못 하겠다. 활동도 피라미드처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 자신의 일상을 지키면서 그 안에서 더 많은 사람과 '선거 제도'를 둘러싼 문제와 고민거리를 나누기 위해 열심히 떠들고 있다. '한 명이라도 설득하자'를 모토로 일상과 활동의 줄다리기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비례민주주의연대 운영위원들이다. 그중 줄다리기가 왠지 유난히 팽팽해 보이는 이를 먼저 만나봤다. 왜냐하면, 그녀는 무척 바빠 보였기 때문인데 알고 보니 진짜 바빴다.

그녀는 비례민주주의연대 운영위원뿐 아니라 성공회대 녹색당 여성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학내 여성의 날 행사나 달빛 시위 등 페미니즘 이슈와 관련한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그녀는 짬을 내 아르바이트를 하는 와중에 주말이 되면 촛불을 들고, 사회적 이슈에 대해 학내 성명서를 작성하고, 그마저도 어려우면 페이스북에라도 목소리를 높여야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 여성이자 과거에는 탈학교 청소녀, 현재는 아르바이트 노동자인 자신의 고민에 귀를 기울여 주는 정치적 대변인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김푸른 님을 만나봤다.


ⓒ비례민주주의연대


얼굴도 아는 사이끼리 인터뷰하려니까 뻘쭘하다. 그래도 아직 모르는 게 더 많다고 믿고 진행해보겠다. 페미니즘 이슈, 정당, 선거제도 개혁 등 여러 영역에서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다양한 영역에 발을 들이게 되었나.

이렇게 바로 시작하나(웃음). 일단,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하루도 불편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학교생활, 아르바이트, 외부 활동 등을 하면서 항상 불편한데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대학 입학 이후 페미니즘을 만나면서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 명확하게 이해되었고, 더 명확하게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여성은 술자리에서 긴장해야 하고, 밤길을 걸을 때 두려움에 떨게 되고, 성희롱/성차별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은 철저히 권력 관계의 문제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불평등하고 안전하지 않은 문화는 바뀔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런 문화를 허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조직적으로 구성된다면, 옳지 않은 문화를 누구든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와 선거제도 개혁 활동도 같은 맥락에 있다. 2016년에 녹색당에 가입하고 총선을 겪으면서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게 되었다. 녹색당이라는 정당을 알고는 있었는데 입당을 해서 당비를 내는 것은 고민되더라. 고민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한국 사회는 정당 활동을 하기가 쉬운 사회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붙는 꼬리표도 많고 특이하게 여기기도 한다. 현재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공부하면 할수록 아무나 정당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그런 맥락에서 녹색당은 여성 당원 비율도 높고 활동에 대한 문턱이 낮았다.

학내에서 녹색당 당원들과 함께 활동하면 이렇게나 기분이 좋거든요 ⓒ비례민주주의연대


정당 활동과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문제의식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었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총선 결과 여소야대로 구성된 20대 국회를 보면서 주변에 들뜬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참담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나를 대변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지'라는 질문이 계속 맴돌았다. 총선 때 녹색당은 5명의 비례대표 후보를 냈는데 정당 득표율은 0.76%에 불과했다. 더 열심히 활동해야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수치를 보고 쿵 하고 얻어맞은 것 같았다. 녹색당의 탈핵, 기본소득, 동물권 등의 의제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았는데 공감을 못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시기에 스스로 질문을 참 많이 했다. 기득권은 이렇게나 공고한데 대체 언제쯤이면 다양한 목소리가 국회에 들어가고,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로 여겨지는 사람들이 언제쯤 정치적 대표자를 가질 수 있게 될까. 구조적인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선거제도라고 생각한다. 현재 선거제도는 정치적 비례성이 존중되지 않는다. 지역 기반의 거대 양당이 독과점할 수 있는 국회를 만드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비례성'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어떤 의미로 해석하고 있는가.

한국 사회는 다양한 선호와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사회가 여러 무늬와 색깔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 색깔이 국회에 골고루 들어가는 것을 '정치적 비례성'이라 이해하고 있다. 사회의 절반이 여성이면 국회에 최소한 절반은 여성이어야 하지 않나. 성 소수자, 장애인은 사회에 존재하는데 이들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은 적거나 없다. 사법부, 언론, 행정, 검찰 등 개혁해야 할 과제가 많은데 그중 많은 부분은 결국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어야 가능한 것들이다. 좋은 국회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선거제도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선거제도가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지역구보다는 비례대표, 즉 정당 투표가 정치적 대표성이 더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정당 내에 농민 출신으로 농민을 대표하는 사람, 여성 단체 활동가, 청년을 대표하는 당사자 등이 비례 대표로 국회에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 쟁점이 명확한 의제와 관련해서도 그 분야의 전문가, 시민이 원하는 정책에 부합하는 사람이 비례 대표를 통해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현재 우리의 선거는 후보 자체에 대한 유권자의 신뢰가 부족하다. 후보의 유명세, 학력이 아닌 어떤 목소리를 내고 살아온 사람인지, 어떤 의제에 관심 있고 누구를 대변할 수 있는지, 대화할 준비는 되어 있는지 등이 중요하게 판단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현재보다 비례대표 의석수가 늘어나고 정당 득표율에 따라 국회 의석이 배분되어야 한다고 본다.

내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의사가 국가의 대표나 정책에 비례적으로 반영되는 것이다. 시민들이 효과적으로 의견을 제시할 통로가 있고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짜이는 것. 기득권이 권력을 남용할 수 없도록 부패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구조. 지금의 선거제도가 이런 것들을 막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영역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각 정치적 경험에서 본인의 의사가 얼마만큼 반영되고 있다고 느끼는가.

청년, 특히 젊은 여성의 말은 나이든 권력 남성보다 묵인되는 경우가 진짜 많다. 내 정체성이 '어린 비혼 여성'으로 여겨지면서 발언권의 무게감이 얕게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학내 토론이나 작은 규모의 회의에서도 그렇고 외부에서 발언 기회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늘 내가 했던 말 자체보다는 '여성', '나이'가 먼저 언급된다. '어린 여성이 기특하네', '나이가 어린 것 치고 대단하네' 이런 식이다. 말의 무게가 다른 쪽으로 쏠리는 느낌이 든다. 과거에는 나의 카리스마 자질 부족을 의심하면서 기가 죽은 적도 많았다. 지금은 가부장적인 것이 권력을 많이 얻는 사회 구조이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 일상에서도 이런데 정치는 더 심한 것 같다. 대선 주자 혹은 국회에서 청년 정책, 여성 정책을 다루는 방식을 보면 나의 목소리나 의제는 남들이 봤을 때 과격하게 운동을 해야만 들어주는 척이라도 하는 것 같다.


그나저나 탈학교 청소녀였나? 전혀 몰랐다. 어떤 고민을 하면서 그만 두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를 했는데 일단 본인의 의지가 가장 컸다. 부모님은 반대하셨지만 학교와 가치 충돌이 컸다. 남들이 보면 사소한 것일 수도 있는데. 예를 들면 성적표를 칠판에 붙여 놓거나, 일정 점수를 받지 못하면 체벌한다거나, 선후배 위계질서 등이 견디기 힘들었다. 학교에 남아서 목소리를 내면서 바꿔볼까도 잠시 고민하긴 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자퇴를 한 것 자체가 할 수 있었던 하나의 표현이자 운동이었던 것 같다. 자퇴를 선택함으로써 우리 문화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거나 학교 선생님도 자기 성찰의 시간으로 삼았던 것 같다.


그럼 자퇴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나.

굳이 자퇴라는 결정을 한 것은 아마 스스로 자신이 있었던 것 같다. 남들이 가는 안정적인 길을 가지 않았을 때 받는 시선을 감내할 수 있는 자신감 같은 것이랄까. 주변에서 보내준 지지도 큰 힘이 되었다. 혼자서 공부하는 기간을 어느 정도 갖다가 대안학교에 들어갔다. 자퇴보다는 오히려 현재 대학으로 편입을 결정할 때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새로운 관계를 다시 맺고 만들어진 곳에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니까.

나는 탈학교 청소녀였고 비인가 고등학교인 대안학교를 나와서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현재는 검정고시를 봐야 고등 교육이 인정되는 구조다. 대안학교에서 받는 교육 과정은 현재 정부의 인준을 받지 못하고 있다. 탈학교 청소녀/소년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시선도 강하다. 우리 사회의 탈학교에 대한 이미지는 보호하고 통제해야 할 대상이다. 일반 공교육이 삐뚤어져서 자퇴할 수밖에 없었던 건데. 탈학교 청소녀/소년에 대한 지원, 공교육의 변화를 꾀하는 것도 정치가 해야 하는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교육 이탈자라 그런지 교육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교육 외에도 관심 있는 사회적 문제가 있나.

요즘에는 대학 구조 개혁 문제에도 관심이 있다. 대학도 등급을 매기니 그 틀에 맞춰서 과정을 바꿔 갈 수밖에 없게 된다. 정해진 기간 내에 빨리 해결해야 하니까 학생들과 소통할 수도 없고. 정치에서 교육이 어떻게 사람을 기르고, 학교의 본질은 무엇인지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럼 최소한 경쟁을 유발하며 줄 세우기를 하는 정책은 탈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친구랑 '만약 우리가 하나의 법을 통과시킬 수 있으면 뭐가 좋을까'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의 대답이 인상 깊었다. 자기는 '1인 1집'을 정책으로 만들고 싶단다. 한 사람에게 하나의 집을 무조건 주는 정책이란다. 청년들의 주거 불안정, 아르바이트를 통해 충당할 수 없는 어려운 규모의 집세 상황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청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정치에 흥미 있는 사람들은 '청년 세대의 목소리', '청년 정책' 같은 화두를 자주 언급한다. 그러나 정작 정치적으로 동원되거나 정책에 활용되는데 그치는 경우도 많다. 농민, 여성, 청년 당사자가 국회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렇다면 청년 당사자 국회의원이 늘어나면 청년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나?

나이가 어린 정치인이 늘어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각 분야에서 주거, 노동 등 전문성과 능력을 갖춘 청년 정치인이 늘어나야 한다. 그런 청년을 길러내는 것이 기성 정치인이 해야 하는 역할이다. '청년'이라는 틀은 굉장히 크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동등한 경쟁자를 대하는 느낌보다는 얼러주면서 미성숙한 존재로 보는 시선이 더 강하다. 더불어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훈련도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은 정치인 양성 시스템이 거의 부재하다. 독일 등의 유럽 국가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정치인을 길러내기 위한 훈련을 한다고 한다. 정당의 정치인 양성 교육, 혹은 청년 위원회 등 정당 내 청년 기구를 통해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본다.

청년이 국회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기탁금 제도도 개선되어야 한다. 현재 기탁금이 1500만 원인데, 15% 이상의 득표를 얻어야 돌려받을 수 있다. 기성 정당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현재의 구조에서 15% 이상을 올릴 수 있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청년이 정치에 당사자로 진입하기 위한 문턱이 너무나 높은 것도 문제다.


(밑도 끝도 없이) 정치란 뭘까.

정치는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밥 먹여 주는 문제이다. 그런데 지금의 정치는 밥을 먹여주려는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이지 않나?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이미 밥을 잘 먹고 있는 사람들이 권력을 놓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변호사, 의사, 교수 출신이고 평균 연령 58세에 남성 비율이 월등하게 높다. 이미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이 과연 사람들의 의제에 귀를 기울일까 싶다.

이번 촛불 집회에 정말 많은 사람이 나왔는데 진짜 대통령 하나 바꾸자고 나온 것은 아니라 본다. 세월호 유가족, 학생, 농민 등 각자가 인간답게 살 세상, 자신이 바라는 대한민국, 정치가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했다. 이제는 사람들이 막는 것을 넘어서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헌법은 국민으로부터 권력이 나온다고 했지만 모든 주권이 국민에게서 나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대의민주주의 국가라면 최소한 자신의 정치적 대표는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헌법 1조대로 국가가 운영되게 만들려면 우리의 현실에 대해 계속 질문을 하고 그것에 필요한 제도를 요구해야 한다.

100인 인터뷰의 첫번째 인증샷 ⓒ비례민주주의연대


마지막 질문이다. 현재 자기 삶의 화두나 고민거리가 있다면 무엇인가.

계절을 즐기기에 여유가 너무 없다. 학교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 와중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서 정치 활동에도 발을 걸치고. 의제는 넘쳐나고 활 할 일은 많고 그래서 그냥 마냥 놀러 다니고 싶은 마음도 드는데. 그러기엔 앞으로 잃을 것이 너무 많은 느낌이다. 잘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의 연대, 활동들이 모여 궁극적으로는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기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생각은 그렇게 하는데. 그 과정에서 불안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진행|신나희(비례민주의연대 운영위원)

속기·재구성|복코(비례민주주의연대 운영위원)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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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민주주의연대

모든 유권자들이 던진 표가 사표가 되지 않는 공정한 선거제도. 민주적인 정치시스템. 선거제도 개혁을 이뤄 하루 빨리 해산하는 게 목표.

0. 투표권이 있다고 공정한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겠다. 기원전 5세기 경 그리스 아테네를 기원으로 삼으면 그 역사는 무려 2,500년에 달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17~18세기 시민 혁명을 통해 자리 잡은 근대 민주주의이다. 이를 기준으로 삼으면 길어야 400년 정도 될 것이다.

이 짧은 민주주의 역사에서 의미 있는 두 가지 사건을 꼽으라면 무엇이 있을까?

첫째는 뭐니 뭐니 해도 보통 선거권의 쟁취일 것이다. 1776년 독립선언을 한 미국에서는 백인, 남성, 21세 이상, 납세 능력이 있는 자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했다. 흑인, 여성, 20세 이하, 일정 규모의 재산을 갖지 못한 자는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없는 존재로 규정한 것이다. 다른 나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19세기 말부터 서구 유럽을 중심으로 여성 참정권에 대한 요구가 본격화 되었지만 온전히 정립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평등과 자유를 민주적 가치로 내건 시민혁명의 국가 프랑스조차 남녀가 평등한 참정권을 갖는다고 명시한 것은 1946년이다. 보통선거권의 쟁취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은 OECD 35개 국가 중 유일하게 만 18세 투표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 발전 과정은 이처럼 보통 선거권의 확대 역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두 번째는 조금 생소할 수 있지만 국회를 어떤 방식으로 구성할지 결정하는 선거제도이다. 20세기 초반 보통선거권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선거제도에 대한 선택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은 소선거구 1위대표제 중심의 선거제도를 선택했다. 스웨덴, 핀란드, 벨기에, 독일 등의 국가들은 정당득표율대로 국회 의석을 배분하는 선거제도(이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했다.

 

이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서로 다른 선거제도는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을까?

먼저 복지 국가계의 원조 격인 영국을 보자. 2차 세계대전 직후 총선에서 승리한 노동당은 사회보장체계 개혁에 나서면서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계의 명언을 남겼다. 그러나 이후 마거릿 대처의 보수당이 장기 집권하게 되면서 이 명언은 흘러간 유행어로 전락해버린다. 마거릿 대처 정권은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장장 12년 동안 집권하면서 복지를 후퇴시키는 방향의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민영화를 추진하고, 교육·의료와 같은 공공분야의 국고 지원을 삭감했다. 철저히 신자유주의 경제 원리에 입각한 정책들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보수당은 무려 12년 동안 단 한번도 50% 이상의 지지를 받은 적이 없다. 지역에서 1등만 하면 당선될 수 있는 소선거구제 1위대표제 덕분에 과반수의 지지를 얻지 못해도 과반수의 국회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영국은 보수당이 집권하고 있다. 2015년 총선에서 고작 36.8%의 득표율로 보수당은 국회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했다. 그 결과 영화 <,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다루는 비인간적이고 관료적인 복지 시스템처럼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정책은 현재 영국의 현실이 되어버렸다.

영국의 사례처럼 소선거구 1위대표제 선거제도는 득표율과 의석 비율간의 불일치(불비례성)을 초래한다. 그 결과 국회는 거대 양당 중심으로 채워지고, 선거를 거듭할수록 기득권 중심의 구조는 더욱 견고해진다. 흔히들 양당제에 비해 다당제가 더 불안정한 정치 지형을 가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대다. 강력한 양당제 국가인 미국만 봐도 어느 쪽이 과반수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정치 지형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다. 게다가 지역구에서 1등을 하기 위해서는 거대 정당의 공천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맥, , 명성 등에서 유리한 사람들로 국회가 채워지기 쉽다. 국민의 대표성은 개뿔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한 국가들은 어떨까

상대적으로 행복도가 높고, 덜 부패하고, 민주주의 지수가 높은 순위에 있는 국가들은 겹친다.


물론 선거제도 하나 때문에 그렇게 된 건 아닐 테지만. 적어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국회를 구성하고 다당제체계를 갖고 있다는 공통점은 주의 깊게 살펴볼만 하다. 정당득표율에 따라 국회의석이 배분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한 국가에서는 어느 한 정당이 독주할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당간의 견제와 감시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여러 정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 또한 불가피해진다. 연립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정당들 간의 협상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정당은 인물이 아닌 정책으로 경쟁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유권자의 선택이 그대로 국회에 반영된다. 소선거구 1위대표제에서는 1등을 제외한 선택은 모두 공중에 사라진다. 1등을 반대하는 사람이 과반수를 넘어도 1등이라 당선된다. 그러나 정당이 득표한 만큼 국회 의석을 나누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사표 심리 때문에, 차악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 때문에, 유권자의 선택이 왜곡 될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든다.

 

이처럼 선거제도는 정치 구조와 사회의 행복 수준에 큰 영향을 미친다. 흔히들 한국은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루어졌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는 달성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진정으로 절차적 민주주의에 도달하긴 한 걸까?

대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절차적 민주주의의 핵심은 정치적 대표성을 사회 구성원에게 두루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나를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대표자가 지금 국회에 있는가? 다수결의 원칙이 지켜진다면 엄연히 한국 사회에서 다수로 존재하는 여성, 노동자, 자영업자, 청년 등의 선호와 이익은 정치 과정에 반영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재 국회는 국민들의 평균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다양한 계층을 대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경제적 약자의 목소리를 국회에서 기대하는 건 허황된 꿈만 같다.

그래서 일단 선거제도 개혁이 정치 개혁의 첫걸음이라고 믿는 사람들 몇몇이 모였다. 모여서 셀럽부터 백수까지다양한 유권자들의 선거와 정치 경험에 대한 목소리를 수집해보려 한다. <100인의 시민, 선거를 말하다>를 통해 선거라는 행위가 정치, 더 나아가 우리 삶에 어떻게 일상적으로 접속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선거 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널리널리 알리고자 한다. 선거제도 그 자체로 민주주의가 완성될 수는 없다. 다만 정치 게임의 룰인 선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공정치 않다면 뜯어 고치는 것은 당연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최초로 시작한 국가, 벨기에의 학자 빅토르 동트(Victor D'hondt)는 비례대표제 시행을 주장하며 이렇게 말했다. ‘투표권이 있다고 공정한 것은 아니다


작성 : 비례민주주의연대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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