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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노무현의 꿈을 실현할 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탁월한 연설가였다. 그가 했던 연설의 대목 중에 지금도 기억나는 부분이 있다. 이 연설은 유튜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자신의 친구에 관해 얘기한 것이다. “그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 친구를 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말은 떠듬떠듬 유창하지 않게 원고를 보면서 읽었습니다만, 제가 아주 존경하는, 나이는 저보다 적은 문재인을 제 친구로 둔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통령감이 됩니다. 제일 좋은 친구를 둔 사람이 제일 좋은 대통령 후보가 아니겠습니까?”
[하승수의 틈]문재인, 노무현의 꿈을 실현할 때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신뢰관계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후에, 그의 친구 문재인은 정치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1년 쓴 책인 <운명>의 제일 마지막 문장은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이후에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력을 이어받아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를 녹여냈다. 그리고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내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역사적 과업을 이뤄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숙제 한 가지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또 한 가지 중요한 숙제를 이룰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바로 정치를 정상화하는 선거제도 개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개혁의 핵심은 정치를 비정상화하고 지역주의를 강화시키는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이 신념이 너무나 강하고 절박했다. 그래서 그는 2003년 12월 국회에 정치개혁 입법과 관련된 편지를 보냈다. 그는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중대선거구제 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제대로 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고, 비례대표 의석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것도 제안했다. 그러나 이 제안은 국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다시 2005년 7월 선거제도만 바꾼다면 야당에게 총리 추천권을 주는 ‘대연정’을 할 수 있다고 발표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의 국가들에서는 ‘대연정’이 흔한 일이었지만 대한민국의 정치현실에서는 낯선 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루려 했던 것은 대연정을 해서라도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것이었다. 그는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선호하지만 다른 선거제도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언급도 했다. 당시 대연정 구상에 대한 반발이 여당 안에서도 거세자 그는 “되물어보고 싶습니다. 이 낡고 고장 난 정치제도로 비정상적인 정치를 계속하자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언제까지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까?”라고 여당 당원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런 희망은 실현되지 못했다. 척박한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그의 생각은 너무 앞서나간 것일 수도 있었다. 그 이후 2015년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당 득표율대로 전체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안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선거제도 개혁을 현실로 만들 기회가 왔다. 그동안 선거제도 개혁에 반대해 왔던 자유한국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승자독식 선거제도의 피해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6·13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은 수도권, 충남, 충북, 강원, 제주, 부산, 울산 등지에서 정당 득표율보다 훨씬 적은 광역지방의회(시·도의회) 의석을 얻었다. 지역구에서 1등을 해야 당선되는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로 대부분의 시·도의원을 뽑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였다. 대표적으로 경기도에서 자유한국당은 25.47%의 정당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의회 의석 중 2.96%(135석 중 4석)만 차지했다. 그동안 90% 이상의 의석을 독차지해오던 부산에서도 자유한국당은 36.73%의 정당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12.77%(47석 중 6석)의 의석만 얻었다.

그래서 자유한국당도 더 이상 선거제도 개혁을 거부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합리적 보수라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받아들이고, 정책으로 경쟁하는 보수정당으로 거듭나는 것이 옳다. 그렇지 않으면 대구·경북 지역정당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물론 지금 자유한국당은 극도의 혼란 상태지만, 김성태 원내대표만 하더라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수용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선거제도 개혁에 이만 한 기회가 다시 오기는 어렵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합의해내고, 개헌 등의 과제에 대해서도 큰 틀의 일정과 원칙 정도라도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제도 개혁은 협상과 타협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이 중대한 일을 국회와 여당에만 맡겨놓아서는 안된다.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현실적으로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 290쪽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번 잡는 것보다 훨씬 큰 정치 발전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이런 노무현의 꿈과 신념을 현실로 만들 때가 되었다.

입력 : 2018.06.24 20:58:01 수정 : 2018.06.24 21:00:23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출처: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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